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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저자는 유래없이 풍부한 원전 자료에 근거를 두고 모든 문화가 놀이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해 세세한 증거를 제시한다.

놀이의 특성이 확고한 규칙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것은 종교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놀이 역시 종교세계와 마찬가지로 공간과 시간의 동질성을 파괴시키며 참여자들로 하 여금 일상생활과 단절시켜 독특하고 폐쇄적인 세계를 만들게 한다.

저자 호이징하(Johan Huizinga)는 1872년 네덜란드 태생으로 1919년 (중세의 가을)을 발 표하여 유럽 인문과학자 중에서 발군의 존재가 되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인류의 문화발전을 하나의 보편적인 개념으로 분석, 설명하여 도식화하고 유형화하려는 시도에서 탈피하여 한 시대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문화사(Kultur-Geschichte)라는 역사학 방법을 택하였다.

(호모 루덴스)는 호이징하가 65세 때이던 1938년에 발표되었는데 그의 문화사 연구의 자 연스러운 귀결로서 현대의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또한 인간의 존재와 행위 양식의 본질 규 명에 새로이 도전하는 한 기념비적 저서이다. 그가 이 책에서 내린 결론은 인간은 Home Sapiens나 Homo Faber라기 보다는 오히려 Homo Ludens라는 것이다.

그리고 놀이는 문화 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형태의 문화 는 그 기원에서 놀이 요소가 발견되고, 인간의 공동생활 자체가 놀이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철학, 시, 예술 등에도 놀이의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명이 애초에는 (놀이되어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문명은 놀이 속에서 놀이로서 생겨나며 놀이를 떠나는 법이 없으 며, 인간은 놀이를 통하여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호이징하는 놀 이정신이 없을 때 문명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현대로 올수록 문화가 놀이의 성격을 잃어가고 있음을 개탄하고 있다.

[읽어보기]

문화현상으로서의 놀이의 본질과 의미

놀이에는 몇가지 형식적 특성이 있다. 첫째, 놀이는 자유스러운 것, 바로 자유이다. 또한 놀이는 (일상적인) 혹은 (실제의) 생활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실제의 삶을 벗어나서 아주 자유스런 일시적인 활동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무관심성, 장소의 격리성과 시간의 한계성, 반복 가능성 등이 또한 놀이의 형식적 특징들이며 긴장의 요소는 놀이행위에 대해 윤리적 내용을 부여한다. 왜냐하면 놀이하는 사람에게는 꼭 이겨야겠다는 욕망에도 불구하고 경기의 법칙만은 따라야 하기 때문에 용기, 끈기, 역량과 함께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성)의 정신력이 요구된다.

모든 놀이는 그 고유의 규칙을 갖고 있다. 놀이의 규칙은 절대적인 구속력을 갖고 있으며 추호의 의혹도 허용치 않는다. 놀이의 규칙이 위반되면 그 순간 놀이의 세계는 무너진다. 그리고 놀이는 다망쳐지게 된다.

놀이가 가진 (특이성)과 그 비밀은 가장(假裝)을 한다는 점에서 생생하게 나타난다. 바로 여기에서 놀이의 탈일상성(脫日常性)이 뚜렷이 드러난다.

제의(祭儀)도 놀이가 될 수 있을까? 그러나 모든 것을 고려해 볼때, 제의를 놀이라고 특정 짓는다고 해서 잘못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제의는 우리가 위에서 열거한 모든 놀이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 참여자들을 다른 세계로 옮겨놓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우리는 놀이의 가장 중요한 성질의 하나가 일상생활과의 공간적인 분리라는 것을 알았다. 현실상으 로는 혹은 관념상으로 폐소돼 그 공간은 일상생활로부터 놀이를 구별하고 주변으로부터 울타리 쳐져있다. 이 공간 속에서 놀이가 진행되고, 그 안에서는 놀이의 규칙이 통용된다. 성스러운 영역을 구획한다는 것은 또한 모든 성스러운 행위의 원초적인 성질이다.

한 공동체가 종교의식을 행하고 경험할 때의 정신적인 태도는 고귀하고 성스러울 정도로 진지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무의식적이고 순수한 진짜 놀이도 역시 매우 진지하다. 놀이하는 사람은 그의 심신을 다 바쳐 그 놀이에 빠질 수 있고, 그것이 (단지) 놀이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뒤편으로 물리칠 수 있다. 놀이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뒤편으로 물러질 수 있다. 놀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되는 즐거움은 긴장으로 변한 뿐 아니라 정신 의 고양으로 변한다. 놀이는 자유 분방함과 무아경의 두 근단 사이에서 움직인다.

민족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종교적 축제가 시행되는 동안의 미개인의 정신적 태도가 완전 한 환상은 아니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실제가 아니다)라는 의식이 밑에 숨어 있다는 것이 다. 이러한 태도는 옌젠(1899~1965, 독일)의 미개 사회의 할례와 성년식에 대한 책에 생생히 그려져 있다. 그들에겐 축제 때 나타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축제의 절정에 이르러서는 모두에게 나타나는 귀신에 대한 공포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놀랄 일이 못되는데, 바로 그 사람들 자신이 그 의식을 계획하고 실행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즉 가면을 만들어 장식한 뒤에 그 귀신 가면을 그들 자신이 썼으며, 사용한 후에는 여자 들 몰래 감추었다. 그들은 귀신이 니타난 것을 알리는 소리를 내고, 모래에서 자기들이 찍어 놓은 발자국을 찾고, 피리를 불어 그 피리소리로 조상의 목소리를 나타냈고 악기들을 휘둘 렀다. 남자들은 성스러운 숲에서 일어났던 소름이 끼치는 이야기를 여자들에게 한다. 그러면 여자들은 완전히 속았는가? 그들은 누가 이 가면을 그렸고, 저 가면에 누가 숨었는가를 너무도 잘 안다. 그러나 여전히 가면이 위협적인 몸짓으로 다가오면 여자들은 무섭게 흥분하 고 소리를 지르면서 사방으로 달아난다. 옌젠은 이러한 공포의 표현은 한편으로는 무의식적 으로 진심에서 우러난 표현이고, 한편으로는 전통이 부과한 역할을 실현한 것 뿐이라고 말 한다. 그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여자들은 놀이의 합창단 같은 것이고, 그들은 (놀이를 망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원시의 말하자면 고대의 제의는 성스러운 놀이로서 그 공동체의 복지를 위하여 필요불가 결하고, 우주적 통찰로 충만해 있으며 사회발전을 잉태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고대 제의는 언제나, 플라톤이 거기에 부여했던 의미로서의 놀이, 즉 일상생활의 필요성과 진지함을 초월 하여 또는 그것을 벗어나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문화를 창조하는 기능으로서의 놀이와 경기

문화와 놀이 사이의 관계는 하나의 집단 또는 두개의 대립하고 있는 집단의 질서있는 활 동에서 존재하는 사회적 놀이라는 더 높은 형태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오락으로서의 경쟁이 나 전시는 문화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앞서는 것이다.

문화란 놀이로서 시작되는 것도, 놀이로부터 시작되는 것도 아니며, 다만 놀이 속에서 시 작되는 것이다. 문화의 대립적이고 투기적인 기반은 처음부터 놀이 안에 주어져 있는 것이 다. 왜냐하면 놀이가 문명보다 더 오래되고 원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라틴 어에서 성스러운 경기가 (놀이)라는 단순한 말로 불렸던 것이 옳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왜 냐하면 그 말이 이러한 문명화 요소라는 특유한 성질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해 주기 때문이 다.

놀이와 법률

언뜻 보기에는 법, 재판, 법령의 영역과 놀이의 영역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 성할 정도의 진지함,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한 사회의 사활이 걸린 이해 관계가 법에 속하는 모든 것을 지배한다.

법과 놀이 사이에 유사성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법의 이념적 근거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 법의 실제 집행, 다시 말해서 소송이 경기와 얼마나 꼭 그대로 닮았는가를 관찰해 보면 금방 확실하게 나타난다. 그리이스에서 소송은 하나의 투기(Agon)로, 즉 확고한 규칙 의 구속을 받고 신성한 형태를 지닌 경기로 여겨졌으며, 그 경우 경쟁하는 두 당사자는 심 판관의 결정에 호소하고 의지했다.

재판과정에는 내기적인 요소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소송의 당사자가 자기의 권리 를 내기에 거는데, 다시 말하면 당사자간 (담보)를 걸어 놓음으로써 자기의 권리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싸우자고 상대방에서 도전하는 것이다. 19세기까지도 영국 법률에는 '내기 (wager)'라는 이름을 가진 민사 소송엔 두 가지 형태의 소송이 있었다. 그 두 형태의 소송의 하나는 소송을 일으킨 당사자가 합법 적인 싸움을 신청하는 '결투재판'이고, 또 하난는 소송을 일으킨 당사자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어떤 특정한 날에 무죄 증명의 서약을 행하 겠다고 맹세하는 '면책 선서 재판'이다.

문경이 진보함에 따라서 소송이 가지고 있는 놀이의 특질이 완전히든, 부 분적으로든, 혹은 실제적으로든, 외견상으로든 상실되어 버렸다고 해도 그러 나 그 본질상으로 볼때 소송은 아직 하나의 말싸움의 형태로 남아있다.

고대의 어떤 특정한 형태의 전쟁에서는 그 전쟁의 놀이 요소가 직접적으로 나타나며, 비교하여 말하면 좀더 놀이답게 나타난다. 때로는 싸우다가 죽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투 재판에서도 놀이의 특성이 나타나고 일정한 형식이 그 필수적 요소를 이루고 있다. 이 결투가 고용된 투기사에 의해 수행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바로 이 결투의 제의적 특성을 나타내 주고 있다.

전쟁 속에 내포된 투기적 또는 놀이의 요소는 각 문명 및 시대에 무작위로 택한 여러 예에서 잘 예시될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그리스의 에우보이아 지방의 두 도시, 칼키스와 에레트리아 간에서 서기 7세기에 있었던 전쟁은 완전히 시합 의 형태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싸우기전에 전쟁의 규칙이 규정된 엄숙한 계약서를 아르케미스 신전에 미리 기탁해 놓았다. 이 계약서 속에는 조우의 시간과 장소가 명기되어 있었다. 던지는 무기, 즉 던지는 창.화살.돌팔매 등은 일체 금지되었다. 다만 칼과 휴대용 창만 허용되었다.

봉건 시대의 중국의 전투를 묘사한 바에 따르면 공후의 명예가 전쟁터에서 훌륭하게 현시되지 않는 한 승리라고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점(利點) 을 취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이점을 최대한 이용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중용을 보임으로써 이루어지낟. 오직 중용만이 승자의 영웅적 덕성을 입증한다.

전쟁을 고상한 명예의 게임으로 보는 관념에서 유래되어 오늘날의 비인간화된 전쟁에서까지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관습은 적과 인사를 교환하는 관습이다. 풍자의 요소가 흔히 담기기 마련인 이 인사교환은 전쟁의 놀이적 성격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 준다. 고대 중국의 군후들은 술잔을 서로 주고 받는게 관례였으며, 그들은 이렇게 교환된 술을 평화로웠던 과거를 회상하면 상호 존경의 표시로서 엄숙하게 마셨다

출처 : 네이버 지식인 http://ow.ly/ae6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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